선수로 산다, 때론 좋은 코치로

[도서] 숨결이 바람 될 때 본문

전체 분류/독서

[도서] 숨결이 바람 될 때

godsman 2018. 3. 3. 10:53

[도서] 숨결이 바람 될 때

숨결이 바람될 때는 책 표지의 문장처럼, 서른 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을 닮은 글입니다. 삶의 마지막이 글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저자인 폴 칼라니티가 예고된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고, 작가가 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의사, 더 성공할 것 같은  젊은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써 내려간 글이 역설적으로 좀더 나이든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죽음에 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감동받은 사람과 책이 몇 권 있습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랜디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 위지안 교수의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신영복교수님의 '담론' 그리고 유시민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가족이 자주 방문하며 매일 오는 건 물론이거니와 하루에 두 번 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하루 걸러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방문 횟수가 줄고, 시간이 더 지나면 환자의 생일과 성탄절에만 찾아온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대부분의 가족이 가능한 한 먼 곳으로 이사해버린다.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살 수 없으면서도 생명을 유지하는 기간이 늘어난 세대의 안타깝지만 당면한 현실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고통과 미안함으로 보내면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생각합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죽음을 선택하는 옵션이 생겨날 겁니다.

그래, 자네에게 좋은 경험이 됐군. 하지만 나 가끔 그 아이들이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도 가끔 저만치 떨어져서 이성적으로 의견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저자는 철학을 전공하고, 생리적, 영적 인간이라고 부른 존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결국은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 의학을 선택합니다. 사람들은 행동하다가 명상하는 방향으로 옮겨 갑니다. 선수였다가 감독이 되고, 해설자가 됩니다.

시체 해부는 엄숙하고 경건한 학생들이 냉정하고 거만한 의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앞부분에서 기증받은 시체를 다루는 이야기를 했을 때 몹시 불편했었는데, 냉정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반성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시체들에게 사과했다. 죄의식을 느껴서가 아니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짧은 글에도 큰 반전이 있습니다. 문장은 짧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경험은 긴 이야기라서 가능하겠죠.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침대 곁에서 밤을 세우거나 하루종일 병원에 있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아시겠죠?

이렇게 냉정하고 거만한 의사가 되어 갑니다. 같은 의미에서 보호자나 간병인 없는 병원(간호·간병 통합 서비스)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을 결정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이면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이지만, 사실 모든 살아있는 사람이 고민하는 질문입니다.

레지던트로서 내가 꿈꾸었던 가장 높은 이상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의사는 그렇죠. 우리는 살려내놓으라고 합니다.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놓는다.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어떻게든 경험하지 않고 피해가면 좋겠습니다. 큰 병과 긴 병에 마주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을 시기에 의사로서의 생각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써 놓은 글입니다. 총망받는 젊은 의사의 객관적인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생각하게 합니다.

환자에게 수술을 못 한다고 말하는 게 우리의 책무일 때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 해주기를 바랄 때도 있지만, 그런 답변을 들으면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습니다.

"당신 아직도 모르겠어?"

"지금 우리 상태가 최고라는 건, 더 나아질 게 없다는 뜻이잖아."

이건 미래를 알고 쓴 이야기라서 슬픈 얘기,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이 최고여도 내일이 더 최고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내 주변은 온통 성공, 가능성, 야심으로 가득했다.

선배들은 더는 내 것이 아닌 미래(젊은 의과학자 상 수상, 승진, 새집)를 살아가고 있었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모든 게 그렇게 보입니다. 하물며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병을 앓으면서 겪게 되는 종잡을 수 없는 건 가치관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 자신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려고 계속 애를 쓰게 된다. 

나는 문득 내가 슬픔의 5단계(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를 이미 다 겪었지만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의 5단계는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일정 단계를 일정 기간 유지하면서 옮겨가는 것이 좋을까, 한번에 수용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것이 좋을까?

결국 의사도 희망이 필요한 존재였다.

의사에게도 저자에게도 희망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은 미래가 창창한 아이에게 남겨주는 메시지인데, 그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웠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비극에 이르러서야 사랑으로 승화되는 글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숙연합니다.

책 제목이 그레빌 남작의 시 <카엘리카>를 인용한 것을 마지막에 옮긴이의 글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책 제목을 지었을까요.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 놓으라.

브루크 풀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Comments